영국 박사 유학생 아내(15년후, 난임극복, 기적)


By 브리스톨 언니(영국품절녀) · 2026

15년 전, 저는 이 블로그에 "돈 없는 영국 박사생 아내의 솔직한 조언"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난방비가 무서워 집에 늦게 들어가던 시절, 매 학기 학비를 내려고 기숙사 청소와 과외를 전전하던 시절의 이야기였지요. 그 글 끝에 저는 이렇게 썼어요.

"저희 부부에게 인생의 봄이
얼른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그 봄이 왔는지, 밤늦게 아이 둘을 재우고 나서 조용한 거실에 앉으니 문득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15년 만에 그 글의 후속 편을 씁니다.


가난한 박사 유학생 아내, 그때의 나에게

15년 전의 저는 정말 당당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절대 가난한 유학생하고 결혼하지 마.
박사 학위 받고 나서 해."

진심이었어요.

1년치 생활비가 6개월 만에 바닥나고, 손발이 시려도 난방을 못 켜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학비를 내고 나면 통장 잔고가 0원이 되던 그 시절. 신랑한테 짜증을 내다가도 미안해서 울고, 울다가도 내일 아르바이트가 있으니까 얼른 자야 하던 날들.

그때는 정말 끝이 안 보였거든요.

그런데 지금, 15년이 지난 이 밤에 저는 웃고 있습니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아마 믿지 못할 거예요.


15년 후, 교수 남편과 함께하는 지금

남편은 그 지독했던 박사 과정을 끝내고, 지금은 교수가 되었습니다.

기숙사 청소복을 입고 화장실 변기를 닦던 그 사람이요. 학비 걱정에 논문을 한 줄도 못 쓰던 날이 있었던 그 사람이, 이제는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고 연구실을 운영합니다.

가끔 남편이 연구실에서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영국에서 밤늦게 도서관에서 돌아오던 그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해요. 달라진 건 이제 집에 난방이 켜져 있다는 것, 그리고 현관문을 열면 아이들이 "아빠!" 하고 뛰어나온다는 것 정도일까요.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남편을 단단하게 만들었고, 저희 부부를 단단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밑 빠진 독에 부었던 물이 결국 헛되지 않았어요. 그 독 밑으로 빠져나간 물이 돌고 돌아 지금 우리 가족의 토대가 되어 있으니까요.


7년 난임극복, 포기하려던 그 순간

사실 박사 과정의 고생은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저희 부부에게는 또 다른 긴 터널이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바로 난임이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유학 시절에는 경제적으로 엄두를 못 냈어요.그래도 생기면 낳아야지 하는 기대로 1년, 2년, 3년... 시간은 흐르고 결국 남편이 박사 논문을 제출할 때 까지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나이는 먹어가고 난임 검사에, 나팔관 조영술까지 받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그 사이클을 7년 동안 반복했어요.

주변에서 아이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국에 있다 보니 왜 아이가 없니 라는 친척들의 안부 인사를 듣지 않아도 되었어요. 하지만 친정 엄마가 "첫째 딸 임신했어? 라는 질문을 들을까봐 친척들 만나기가 싫어"라는 말에 속상해서 혼자 많이 울었습니다. 영국에서 학비 걱정에 울던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눈물이었어요.

돈은 벌면 되지만, 생명은 내 의지대로 되지 않으니까요.

어느 순간 저는 남편에게 "난 아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는데..."라며 거의 포기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처럼 찾아온 첫째.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둘째까지.


기적은 버틴 사람에게 찾아온다

지금 저는 아이 둘의 엄마입니다.

이 문장을 쓰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15년 전 "인생의 봄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썼던 그 사람이, 지금은 봄 한가운데 서 있어요.

15년 전의 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지금 너무 힘들지? 끝이 안 보이지?

그런데 버텨. 네가 상상도 못 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 교수 남편도, 두 아이도, 따뜻한 집도.

지금은 믿기지 않겠지만, 밑 빠진 독에 붓고 있는 그 물이 언젠가 꽃을 피울 거야."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 15년 전의 저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이 있다면 이 말을 전하고 싶어요.

가난한 유학생과의 결혼을 말리던 제가, 15년이 지난 지금은 이렇게 말합니다.

힘든 시간은 영원하지 않더라고요.

물론 여전히 "학비 마련 없이 박사 과정 절대 시작하지 마세요"라는 현실적인 조언은 유효합니다. 하지만 그 조언 뒤에 이 한 줄을 덧붙이고 싶어요. 만약 이미 그 길 위에 있다면, 지금 겪고 있는 고생이 반드시 어딘가 에 쌓이고 있다는 걸 믿으세요.

가끔씩 남편과 영국 추억을 떠올립니다. 생활비가 떨어져 고추장에 밥 비벼 먹던 이야기, 난방비 아끼려고 도서관에서 버티던 이야기, 기숙사 청소하면서 서로 눈이 마주쳐 웃었던 이야기, 학비 내고 나서 텅 빈 통장을 보며 한숨 쉬던 이야기. 힘든 일이 훨씬 더 많았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일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웃으면서 꺼낼 수 있는 우리 둘만의 추억 거리가 되었어요.

요즘은 그런 영국이 참 그립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우리 아이들과 함께 엄마 아빠가 처음 만났던 브리스톨과, 신혼 시절 박사 공부를 하던 캔터베리를 꼭 가보고 싶습니다. 아이들 손 잡고 그 거리를 다시 걸으면 어떤 기분일까요. 나도 아이가 생기면 꼭 다시 함께 와야지 했었거든요.

우스개 소리로 진담 반 농담 반,
남편에게 말합니다.

"우리 2년 후에 영국 놀러 가자!"

꼭 말대로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2년을 열심히 총알 준비해 보렵니다. 15년 전에는 학비 총알이 없어서 울었는데, 이제는 여행 총알을 모은다니. 이것도 어찌 보면 기적 아닌가요? 😝


밤이 깊어지니 감성이 폭발하네요. 아이들 이불 한번 덮어주고 자야겠습니다.

15년 전에는 난방이 무서워 이불을 꼭 껴안고 잤는데, 오늘 밤은 따뜻한 방에서 작은 숨소리 두 개를 들으며 잠들 수 있다는 게, 이게 바로 기적인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도 봄이 찾아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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