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언서 직업(영국, 학벌, AI)

명문대 전문직이 인플루언서 스펙인가

요즘 아이들에게 "커서 뭐 하고 싶어?"라고 물으면, 의사나 변호사가 아니라 유튜버와 인플루언서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부모 세대가 듣기엔 좀 당황스러울 수 있는데요, 숫자를 들여다보면 이건 단순한 유행이 아니더군요.

얼마 전 전직 의대 교수가 "명문대와 전문직이 결국 인플루언서 스펙 쌓기가 될 것"이라는 기사(헤럴드경제)가 화제가 됐습니다. 처음엔 과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저것 찾아보니 무시하기 어려운 흐름이 있었습니다.

이 주제가 유독 와닿는 건, 제가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전과 후'를 모두 겪어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011년부터 '품절녀의 영국 귀향살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영국 현지 문화, 유학, 이민 정보를 전했었지요. 월 방문자 수만 명에 광고 수익화, 브랜드 협업 제안까지 받아봤는데, 그때만 해도 '인플루언서'라는 단어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넘는 시간이 흐르고, AI 시대에 다시 블로그를 시작해 보니 콘텐츠를 만드는 풍경이 완전히 달라져 있더군요.


영국 Z세대도 꿈꾸는 직업, 인플루언서

Whop이라는 플랫폼이 12~15세를 조사했는데, 30% 이상이 유튜버를 희망 직업 1순위로 꼽았다고 합니다. 영국도 마찬가지여서 10세 아동의 17%가 인플루언서가 꿈이라고 답했고요.

놀라운 건 10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IZEA의 2024년 영국 보고서를 보면, 18~29세 성인 중 54%가 풀타임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다면 지금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답했더군요. 성인 절반 이상이요. 이 정도면 가볍게 볼 수치가 아니지요.

이 현상의 배경에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Creator Economy)의 성장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개인이 콘텐츠를 만들고, 플랫폼을 통해 직접 수익을 내는 생태계를 뜻하는데요. 시장 규모가 24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하니 이제 완전히 하나의 산업이 된 셈입니다.

제가 영국에서 블로그를 할 때도 광고 수익이 생기고 브랜드 협업 제안이 들어왔었는데, 그때만 해도 "블로그로 돈을 번다"고 하면 주변에서 신기해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거든요. 격세지감입니다.


전문직을 떠나는 사람들, 크리에이터로 향하는 이유

인플루언서가 끌리는 이유의 이면에는, 전통적 전문직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는 현실이 있습니다.

영국 의료 전문 매체 Medscape UK가 의사 1,012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수련의의 45%가 임상 외 다른 경력을 고려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거의 절반이지요. 가장 큰 이유는 번아웃(Burnout), 즉 만성적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극도의 피로 상태였습니다.

법조계도 비슷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더군요. 미국 대형 로펌 변호사가 틱톡 유료 파트너십 때문에 퇴사하거나, 유료 SNS 포스팅이 이해충돌이라는 통보를 받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결국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의 특성이 크다고 봅니다.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 자란 세대를 말하는데요. 이들에게 카메라 앞에서 10만 명에게 이야기하는 건 자연스럽지만, 사무실에서 10명과 회의하는 건 에너지가 빠지는 일이거든요.

혼자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해서 올리는 방식이 훨씬 맞는 세대인 거지요.


학벌이 인플루언서 직업의 차별화 수단이 되는 구조

그렇다면 명문대 학력은 이 새로운 직업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2025년 영국 서튼 트러스트(Sutton Trust)가 발표한 "Elitist Britain 2025" 보고서가 흥미롭습니다. 처음으로 인플루언서를 분석 대상에 포함했는데, 사립학교 출신은 18%, 옥스브리지 출신은 겨우 4%에 불과했거든요. 신문 칼럼니스트의 50%, BBC 임원의 38%가 사립학교 출신인 것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영국에서 직접 살아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어떤 학교를 나왔느냐는 한국 못지않게 민감한 주제입니다. 사립학교(퍼블릭 스쿨) 출신과 공립학교 출신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런 영국에서조차 인플루언서 세계만큼은 학벌 장벽이 낮다는 게 의미심장하더군요.

그런데 학벌이 필수는 아니지만, 있으면 강력한 퍼스널 브랜딩(Personal Branding) 도구가 되는 건 사실입니다. 개인의 전문성과 이미지를 브랜드처럼 관리하는 전략인데요. "서울대 출신 유튜버", "전직 외과의사 크리에이터"라는 타이틀은 "왜 이 사람 말을 들어야 하지?"라는 질문에 대한 즉각적인 답이 되지요.

이건 제 블로그 경험에서도 확인한 부분입니다. 남편의 박사 과정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과 영국의 학위 과정을 비교하는 글을 쓰면 유독 반응이 좋았거든요. "직접 겪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이 독자들에게 신뢰를 줬고, 그 신뢰가 블로그 전체의 브랜드로 이어졌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게 바로 퍼스널 브랜딩이었던 거지요.

실제로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올해 연구에서도 미국 건강 인플루언서의 17%가 의사·간호사 등 정규 의료 전문직 출신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에서도 연예인이 명문대 출신이면 "뇌섹" 이미지가 붙으면서 호감도가 올라가잖아요. 인플루언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콘텐츠를 자주 보는 입장에서 솔직히 말하면, 같은 건강 정보라도 프로필에 "현직 의사"라고 적힌 채널을 먼저 클릭하게 됩니다. 이성적으로 따지기 전에 "일단 믿어도 되겠다"는 판단이 먼저 작동하거든요.

이게 바로 학벌과 자격이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즉 신뢰를 기반으로 한 무형의 자산으로 전환되는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AI가 콘텐츠 진입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다

여기에 기름을 붓고 있는 게 AI입니다.

이건 제가 직접 겪은 변화이기도 합니다. 영국에서 블로그를 운영할 때는 글 하나에 몇 시간이 기본이었거든요. 한국과 영국의 교육 제도를 비교하는 글을 쓴다고 하면, 영국 정부 사이트에서 통계를 찾고, 남편이 겪은 박사 과정 경험과 대조하고, 한국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 맥락을 풀어쓰는 데까지 반나절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최근 다시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AI를 활용해 보니,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바로 자료 조사와 팩트체크 과정이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여러 사이트를 직접 돌아다니며 교차 검증해야 했던 해외 데이터를 AI가 빠르게 정리해 주더군요. 이 글에 인용한 Sutton Trust 보고서나 Pew Research 데이터도 AI 덕분에 훨씬 빠르게 찾았습니다. 물론 최종 판단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지만, 리서치 속도가 확 빨라진 건 확실합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닙니다. 현재 크리에이터의 59%가 AI 도구를 콘텐츠 제작에 활용하고 있고, 가장 많이 쓰는 건 ChatGPT나 Claude 같은 AI 챗봇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글 초안부터 이미지 생성, 영상 편집까지 AI가 도와주니, "딸깍 한 번이면 콘텐츠가 나온다"는 광고 문구가 아주 틀린 말도 아닌 시대가 됐습니다.

더 놀라운 건 버추얼 인플루언서(Virtual Influencer)의 등장입니다. AI로 만든 가상의 인물이 실제 인플루언서처럼 SNS에서 활동하며 브랜드 협업까지 하는 건데요. 스페인에서 만든 AI 인플루언서 아이타나 로페즈는 팔로워 20만 명에, 게시물당 약 1,000달러를 받는다고 하더군요. 실존하지 않는 사람이 실제 크리에이터의 수입을 위협하고 있는 거지요.

이런 환경에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심리적 장벽까지 허물어집니다. 생성형 AI(Generative AI), 즉 텍스트, 이미지, 영상을 자동으로 만들어내는 기술 덕분에 콘텐츠 제작이 민주화되고 있는 거지요. 얼굴 드러내기 싫으면 AI 아바타를 쓰면 되고, 편집이 부담이면 AI가 자동으로 잘라줍니다.

다만 여기서 역설이 생깁니다.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이 콘텐츠를 왜 믿어야 하지?"라는 신뢰 문제가 더 중요해진 거지요. AI가 진입장벽을 낮출수록, 오히려 전문성과 학벌의 차별화 가치는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인플루언서 마케팅 시대, 직업의 의미가 바뀌고 있다

좋은 대학 → 좋은 직장 → 안정된 삶. 이 공식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의대 6년, 로스쿨을 거쳐도 번아웃에 시달리는데, 인플루언서 마케팅(Influencer Marketing) 시장에서는 학위 없이도 수십만 팔로워를 모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SNS에서 영향력 있는 개인을 통해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 시장의 글로벌 규모가 240억 달러에 달합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짚고 넘어갈 부분도 있습니다. McCann의 크리스탈 말라키아스에 따르면 크리에이터의 평균 활동 수명은 3~7년 정도라고 하거든요. 꽤 짧지요. 그래서 똑똑한 크리에이터들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 이해력을 다른 산업에 접목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미래에는 "의사냐 인플루언서냐"가 아니라, 둘을 결합하는 하이브리드형 경력이 늘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낮에는 진료하고 저녁에는 건강 콘텐츠를 올리는 의사, 법률 자문을 하면서 법률 교육 채널을 운영하는 변호사처럼요.

명문대와 전문직 자격이 "인플루언서 스펙"이 된다는 말은 아직 과장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AI가 콘텐츠 제작의 문턱을 낮추고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면서, 전문 자격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이기 시작한 건 분명해 보입니다.

몇 시간씩 자료를 뒤져야 글 하나를 완성하던 시절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AI와 함께 다시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지금이 그 변화의 한가운데라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결국 도구가 아니라, 그 도구로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닐까요.

글쓴이 — 브리스톨 언니(영국품절녀)

2011~2014년 '품절녀의 영국 귀향살이' 블로그를 운영하며, 영국 어학연수· 유학·이민·여행 정보를 찾는 한국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다음뷰 해외 블로거 국제 부문 1위를 1년 이상 유지했으며, 2012년 런던 올림픽 기간에는 SBS 라디오에 현지 리포터로 출연했다. 영국 여행 가이드북 《우리는 지금 영국으로 간다》를 집필한 바 있다. 현재는 AI 도구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을 탐구하며 블로그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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