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지하철 찜통(에어컨, 지옥철, 120년)
안녕하세요. 영국에서 7년 거주, 전 영국 IB 학교 강사 브리스톨 언니입니다. 😊
며칠 전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눈을 의심했어요. 폭염 속 런던 지하철 퇴근 길 영상이었는데, 사람들이 빼곡히 끼어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이 딱 우리나라 1호선 풍경이더라고요. “와, 이게 영국이야?” 싶었어요. 어찌나 비현실적이던지 AI가 만든 사진인 줄 알았다니까요. ㅋㅋ 영국에서 7년이나 살았던 저조차 “와, 이게 영국이야?” 소리가 절로 나왔으니까요.
특히 빅토리아 라인(Victoria line)이 어찌나 덥던지, 한 정거장만 가도 등 줄기에 땀이 흥건했어요. 빅토리아 라인은 런던에서도 가장 깊고 빠른 노선 중 하나라 더 후끈하거든요. 솔직히 고백하면, 그래서 저는 ‘여름철 런던 방문’은 웬만하면 피하고 싶을 정도예요. 도시는 그렇게 아름다운데, 그 지하철만 떠올리면 한숨부터 나와요. — 브리스톨 언니, 빅토리아 라인에서 땀 흘리며
“세계 최초의 지하철이, 120년째 에어컨이 없다고?”
그런데 드디어 그 영국이 움직였어요. 런던 지하철에 사상 처음으로 에어컨이 달린다는 소식이거든요. 오늘은 그 ‘찜통 지하철’의 민낯과, 120년 만의 대 변신을 세 가지로 풀어볼게요 — 에어컨, 지옥철, 그리고 120년.
지옥철 — 런던 지하철이 여름마다 찜통이 되는 이유
런던 지하철은 별명이 튜브(Tube)예요. 튜브란, 땅속 깊이 원통형으로 뚫은 터널을 그대로 부르는 말인데, 바로 이 ‘깊은 튜브’ 구조가 더위의 원인이에요. 특히 깊은 노선을 딥 튜브(deep tube)라고 불러요. 딥 튜브란, 지표면에서 수십 미터 아래 좁은 원형 터널을 달리는 노선으로, 환기가 거의 안 되는 게 특징이에요.
문제는 100년 넘게 열차가 뿜어낸 열이 터널 흙벽에 차곡차곡 쌓였다는 거예요. 처음엔 시원했던 땅속이, 이제는 ‘열을 머금은 가마솥’이 됐죠. 거기에 차량까지 낡았어요. 지금 굴러다니는 피카딜리선 열차는 1975년에 도입된 50년 된 차량이라, 당연히 에어컨이 없어요. (출처: Railway-News)
제가 살던 시절에도 이 50년 된 차량이 그대로 굴러다녔어요. 창문을 열 수 있는 칸은 그나마 다행이고, 그마저도 뜨거운 터널 바람이 들어올 뿐이었죠. 한여름엔 열차가 역과 역 사이에서 잠깐 멈추기라도 하면, 객차 안 공기가 순식간에 후끈 달아올라 다들 부채질을 하면서 얼굴을 식혔어요. 에어컨이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던 거예요.
제가 늘 “런던은 멋지지만 여름 지하철은 사양”이라고 말하는 이유예요. 그러니 이번에 SNS에서 본 그 ‘1호선 같은’ 퇴근 길 영상이, 저한텐 전혀 과장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거봐, 내 말이 맞지?” 싶었죠. — 브리스톨 언니, 1호선과 빅토리아 라인을 모두 겪고
에어컨 — 런던 지하철 사상 첫 냉방, 무엇이 바뀌나
드디어 본론이에요. 런던교통공사 TfL(Transport for London)이 약 34억 파운드(약 6조 원)를 들여 — TfL이란, 런던의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을 총괄하는 공공 기관이에요 — 피카딜리선에 신형 전동차 94편성을 단계적으로 투입해요. 50년 된 낡은 차량을 싹 교체하는 거죠. (출처: Railway-News)
핵심은 딥 튜브 사상 최초의 에어컨이에요. 그동안 못 단 이유가 있었어요. 좁은 터널에 에어컨 실외기를 넣을 공간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에어컨 유닛이 작아지면서, 이제 언더플로어(under-floor) 방식이 가능해졌어요. 언더플로어란, 객실이 아니라 열차 바닥 아래 빈 공간에 냉방 장치를 숨겨 넣는 설계를 말해요. (출처: Climate Home News)
바뀌는 건 에어컨만이 아니에요. 칸 사이가 뻥 뚫린 통로형(walk-through) 객차라 객차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고, 넓은 양문형 출입문 덕에 타고 내리기도 편해져요. 운행도 시간 당 24편에서 27편으로 늘어 도심 피크 수용력이 약 23% 커지고, 신형이라 에너지는 20% 덜 쓰면서 10% 더 많은 승객을 태워요. (출처: Railway-News)
관광객으로 런던을 ‘잠깐’ 보는 것과, 매일 그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건 완전히 다른 경험이에요. 저는 전자였지만요, 런던 지하철 경험이 너무 덥고 답답했던 기억이 강해서인지 더욱 크게 와 닿아요. 2027년이면 제가 그렇게 고생했던 그 노선들이 시원해진다니,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서 괜히 뿌듯하기까지 하더라고요. — 브리스톨 언니, 런던 방문 시절을 떠올리며
그런데 올해는 다르더라고요. 인터뷰마다 “너무 덥다”, “이젠 에어컨이 필요하다”, “매일 아이스 음료를 마시고 싶다”는 말이 쏟아져요. 그 ‘햇볕 사랑’ 영국인들이 더위에 두 손 든 거예요. 보면서 ‘와, 진짜 더위 앞엔 장사 없구나’ 싶었어요. 영국인의 정서까지 바꿔 놓을 만큼, 그만큼 올여름이 뜨겁다는 뜻이겠죠. — 브리스톨 언니, 달라진 영국 거리 인터뷰를 보며
120년 — 세계 최초 지하철이 변화에 이토록 느린 이유
여기서 한 번 쯤 의문이 들어요. 런던은 1863년 세계 최초로 지하철을 연 도시예요. 그런 도시가 왜 이제 서야 에어컨을 달까요?
역설적이게도, ‘세계 최초’였기 때문이에요. 가장 먼저 만들었으니 가장 오래된 인프라를 떠 안았고, 120년 전 좁은 터널 규격에 21세기 열차를 맞춰 넣어야 하니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교체 작업이 된 거죠. 런던교통공사(TfL)는 스스로도 이걸 “지금까지 지하철에 도입된 가장 복잡한 열차”라고 표현할 정도예요. (출처: ITV News)
그게 멋스러운 전통일 때도 있어요. 100년 된 벽돌집, 손때 묻은 펍, 빨간 이층 버스… 영국의 매력은 사실 그 ‘오래됨’에서 나오니까요. 하지만 한여름 지하철에선, 그 ‘오래됨’이 그저 ‘고문’이 되기도 해요. 낭만과 불편의 경계가 참 애증이죠. 그래서 이번 에어컨 소식이, 저처럼 그 더위를 겪어본 사람에겐 단순한 교통 뉴스가 아니라 “드디어 영국이 한 발 움직였구나” 싶은, 꽤 상징적인 사건이에요. — 브리스톨 언니
제가 런던을 방문할 때마다 터득한 여름 지하철 생존법이 있어요. 가능하면 출퇴근 러시(특히 오후 5~7시)는 피하고, 깊은 딥 튜브 대신 지상 구간이 많은 노선을 골라 타고, 물 한 병은 늘 가방에 넣고 다녔죠. 그래도 한계는 분명했어요. 결국 ‘견디는 것’ 말곤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에어컨 소식이 그렇게 반가운 거예요.
마치며 — 에어컨 없던 나라의,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
생각해보면 제가 이 블로그에서 다룬 이야기들이 다 한 줄로 이어집니다. 폭염에도 에어컨 없는 집, 텀블러를 챙겨야 하는 카페, 긴 바지 교복... 영국은 늘 ‘오래된 방식’을 고수해 왔죠. 그런데 그 영국이 카페에선 말차를, 손엔 텀블러를, 그리고 이제 지하철엔 에어컨을 들이고 있어요. 느리지만, 분명히 바뀌고 있는 거예요.
물론 저는 여전히 “여름 런던 지하철은 사양”이지만, 2027년 쯤 시원한 피카딜리선을 타게 되면 그땐 기꺼이 한 줄 정정할게요. “이제 런던 지하철, 1호선 아니에요”라고요. 😊 그날이 오기 전까진, 여름 런던 가시는 분들 — 더위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여유 챙겨 가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