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박사생 배우자 현실(PHD Widow, 스트레스)
PHD Widow — 남편이 살아있지만 혼자 사는 삶
박사생을 남편으로 둔 아내들 사이에서 PHD Widow(박사 과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편이 살아있지만 논문에 빼앗겨 사실상 혼자 사는 것과 다름없다는 뜻이죠.
저는 유학생 아내로 4년간 남편의 박사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은 딱 하나입니다. "내 자식은 가능하면 박사 공부 안 시키고 싶다."— 브리스톨 언니, 4년간의 PHD Widow 생활을 마치고
이건 이름 앞에 '닥터(Doctor)'라는 명칭만 붙을 뿐, 별로 권할 것이 못 됩니다. 취업이 보장된 것도 아니고, 학비와 생활비는 돈대로 들고, 본인은 힘들고, 배우자는 고생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이렇게 힘들 줄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남편이 아침 8시에 켄트 대학교 Rutherford College로 출근하면, 저는 빈 플랫에 혼자 남았습니다. 영국 캔터베리의 겨울은 오후 3시면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낯선 나라에서 남편 없이 긴 오후를 보내는 시간이 처음에는 자유로웠지만, 몇 달이 지나면서 고독으로 바뀌었습니다.
Tea Morning 모임 — 4년을 버틸 수 있었던 힘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힘 중 하나가 있었습니다. 영국 켄트 대학 교수 아내들이 만든 Tea Morning 모임이었습니다.
매달 한 번, 오전 10시에 모이는 모임이었습니다. 멤버들의 집을 돌아가면서 만났는데, 얼그레이나 커피와 함께 직접 구운 영국식 케이크·쿠키를 먹으면서 근황 토크를 나눴습니다. 저는 매달 그 모임을 즐겨 참석했었습니다.
처음 참석했을 때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영국식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는데, 교수 아내 한 분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남편이 뭘 연구하는지 이해하니?" 제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하자, 방 안의 모든 분이 웃으면서 "우리도 다 마찬가지야"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어깨의 힘이 쑥 빠지면서 '여기 내 편이 있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브리스톨 언니, Tea Morning 모임을 회상하며
영국 문화를 익히기도 하고, 힘든 점은 그분들이 해결해주시기도 했습니다. GP(영국 주치의) 등록 방법부터 근처 마켓 추천까지, 현지 생활의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습니다. PHD Widow에게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위로를 나누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박사생 에티켓 — 절대 하면 안 되는 질문
박사생 주변에는 에티켓이 있습니다. 저도 오래 알지 못했던 사실입니다.
저는 매일 귀가하는 남편에게 가볍게 물어봤습니다. "오늘 계획한 만큼 잘 됐어? 얼마나 진행됐어? 이번 달은 어디까지 끝내는 거야? 교수는 뭐래?"
남편은 늘 답해줬고 자신의 논문 상황을 설명해주는 걸 좋아했기에, 저는 그런 질문이 에티켓이 아님을 크게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세컨드 지도교수님 — 4년을 버티게 해준 분
남편의 세컨드 지도교수님은 정말 특별한 분이셨습니다.
옥스퍼드 출신에 일본어를 매우 유창하게 구사하시는 영국 여교수님이셨습니다. 학업 뿐 아니라 생활 전반적인 것까지 다 신경 써주시는 분이라 남편이 많이 의지하기도 하고, 함께 식사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논문 막바지에는 지친 남편을 불러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시기도 했어요.— 브리스톨 언니, 세컨드 지도교수님을 회상하며
논문 막바지에는 지친 남편을 연구실로 불러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지금 네가 쓰고 있는 이 챕터는 충분히 좋다. 너무 완벽하려고 하지 마라"라는 말 한마디가 남편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모릅니다. 그 교수님의 배려가 없었다면 남편이 4년을 버티기 훨씬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지도교수와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논문 막판 — 하루 3~4시간 수면과 입술이 곪던 날들
모든 일에는 막판 몰아치기가 있듯, 논문 제출이 임박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남편의 지도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남편의 지도교수, 논문 막바지에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논문 마무리할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 너도 마찬가지일 거야. 지금은 그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오로지 논문 마무리에만 신경 써라. 지금은 그래야만 하는 시기니까."
프랑스 니스로 잠깐 휴가를 갔을 때도 남편은 해변에 앉아 논문 생각을 놓지 못했습니다.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도 노트북을 열었고, 저와 눈이 마주치면 미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다"는 박사생들의 공통된 말이 딱 맞았습니다..
배우자의 스트레스 — 아무도 말하지 않는 현실
논문 막판에는 저 역시 체력이 바닥이었습니다. 남편의 불규칙한 생활 패턴에 저까지 밤낮이 바뀌는 통에, 두세 시간만 자고 출근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심신이 지쳐서 그렇게 좋던 입맛마저 사라졌고, 스트레스로 살이 빠진 것을 주변에서 알아볼 정도였습니다.
지인 분이 남편에게 물어봤다고 합니다. "아내가 보양식은 챙겨주나요?"— 브리스톨 언니 남편, 지인에게 농담처럼 털어놓으며
남편의 대답 — "돈 벌어 온다고 먹는 것은 알아서 먹으라고 하던데요. 저는 살기 위해 먹고 있습니다. 박사 논문 막판인데도 아내가 천대하네요." 😂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거의 4년 간을 고생하며 살다 보니 논문 막판이라고 해도 크게 다를 바를 못 느끼겠더라고요. 그저 고통의 강도만 더 세졌을 뿐이었습니다. 고3 부모처럼 1년만 바짝 신경 쓰면 되는 것도 아니고, 4년 간을 수험생 부모처럼 산 것이거든요.
심신이 지쳐서 그렇게 좋던 입맛마저 사라졌고, 스트레스로 살이 빠진 것을 주변에서 알아볼 정도였습니다. 박사생이 받는 스트레스는 옆에 있는 배우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제가 왜 이렇게 몸이 힘든지 알았답니다. 임신을 한 거였어요. 그런데 워낙 7년째 아기가 안 생기니 임신 증상이었는데도 저는 전혀 몰랐다는 거에요. 그냥 감기 몸살인 줄만 알았어요. 그러다가 남편 논문 제출하고 나서야 제가 임신인 줄 알았답니다. 그 정도로 저도 남편도 제 정신이 아니었다는 반증인 셈이지요.
7. 마치며 — 그래도 권하고 싶지 않은 이유
박사과정은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도 함께 치르는 시험입니다. 학생 본인은 말할 것도 없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배우자도 정말 힘듭니다.
그래도 저희는 해냈습니다. 2015년 7월, 8개월짜리 아기를 데리고 켄트 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던 그날의 기쁨은 4년의 고통을 모두 녹여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졸업 가운을 입은 남편 옆에서 아기를 안고 사진을 찍을 때, 4년간의 외로움과 눈물이 한꺼번에 보상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유학생 배우자로 외국에서 사는 삶,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박사생 배우자와 사는 삶은 선뜻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개인차가 있으니 그저 참고만 하세요. 😊
📌 이 글의 핵심 요약
- PHD Widow — 박사생 배우자는 사실상 혼자 사는 것과 같습니다
- 박사생에게 논문 진행 상황을 묻는 것은 에티켓이 아닙니다
- 논문 막판 — 하루 3~4시간 수면, 입술 곪음, 배우자도 스트레스
- 지도교수와의 관계 — 세컨드 교수님의 배려가 4년을 버티게 했습니다
- Tea Morning 모임 — PHD Widow에게 동료가 필요한 이유
참고 자료 및 출처
[1] 브리스톨 언니 직접 경험 (남편 켄트 대학교 박사과정 4년 동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