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영국에서 7년 거주하며 국제학교 IB 한국어 강사로 일했고 브리스톨에서 석사까지 마친, 지금은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브리스톨 언니입니다. 오늘은 영국 이혼률이 크게 줄어든 이유를 씁쓸한 마음으로 짚어볼게요.
몇 년 전 나는 주변에 있던 영국인 부부 얘기를 신기해하며 글로 쓴 적이 있다. 이혼은 했는데 집이 도무지 안 팔려서, 어쩔 수 없이 한집에 계속 살고 있던 부부였다. 부부에서 그냥 동거인(housemate)으로 신분만 바뀐 채, 서로의 애인이 자유롭게 집을 드나드는데도 별 갈등 없이 지낸다고 했다. 그때는 그게 참 별난 사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영국 소식을 다시 찾아보다가 알았다. 그건 별난 사례가 아니라, 지금 영국을 완전히 뒤덮은 흐름의 아주 초기 버전이었다는 걸.
그때 그 부부, 사실 유행의 시작이었다
다시 떠올려보면 그 부부의 사정은 단순했다. 이혼 서류엔 도장을 찍었는데, 집을 팔 방법이 없으니 물리적으로 갈라설 수가 없었던 거다. 각자 애인을 만들고 자유롭게 연애하면서도, 주방과 거실은 계속 같이 썼다. 나는 그걸 "쿨한 영국인들의 특별한 사례" 정도로 받아들였다. 당시 글에도 썼듯, 그 시절 나는 영국인들이 감정에 참 솔직하다는 인상을 받았을 뿐, 그 이면에 있는 경제적 압박까지는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지금 영국은 아예 이 현상에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지금 영국 이혼 전문 업체들의 발표를 보면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한 온라인 이혼 서비스 업체는 이걸 아예 "조용한 이혼 위기(silent divorce crisis)"라고 부른다. 2022년 이후 실제 이혼 신청 건수가 절반 가까이 줄었는데, 이유가 부부 사이가 좋아져서가 아니라 이혼할 형편이 안 돼서라는 거다. 전문가들은 이 상황을 "너무 가난해서 헤어지지도 못한다(too broke to break up)"고 표현한다.
실제 사례들을 보면 내가 알던 그 부부와 놀랍도록 닮았다. 감정적으로는 이미 정리가 됐는데, 대출금리와 집값 때문에 물리적으로 갈라서질 못해서 "같은 부엌을 쓰면서 각자 재정 정리표를 짜는" 상황. 몇 년째 잠자리는커녕 대화도 거의 안 하면서 같은 지붕 아래 사는 부부들, 각자 방을 쓰며 아이를 함께 키우는 "한 지붕 공동육아" 사례까지 다양하게 보고되고 있었다. 한 사례자는 크리스마스 직후에 갈라섰는데, 고정금리 대출 기간이 끝나면서 결국 누구도 혼자 집을 감당할 수 없게 됐고, 3년 넘게 같은 침대는커녕 대화조차 거의 안 하며 지낸다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이유는 그때도 지금도 똑같이 '돈'이다
원인은 몇 년 전 내가 썼던 그대로다. 다만 규모가 훨씬 커졌을 뿐이다. 그때는 경기 불황 정도였다면, 지금은 대출 금리가 2000년대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오르고, 렌트비는 천정부지로 뛰고, 생활비 전반이 급등한 복합적 위기다. 이혼 후 두 가구를 유지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 자체가 줄어든 거다. 한 이혼 전문가는 이 문제를 방치하면 불안과 갈등이 더 늘어날 거라며, 정부와 대출기관이 별거 중인 부부를 위한 더 유연한 금융 상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던 것 — 이건 웃을 일이 아니었다
솔직히 몇 년 전 글을 쓸 때 나는 이 부부의 상황을 살짝 흥미로운 가십처럼 다뤘다. 자유롭게 연애하며 쿨하게 동거하는 모습에만 초점을 맞췄던 거다. 그런데 지금 자료를 보니, 이게 훨씬 무거운 이야기라는 걸 알겠다. 안전이나 건강에 위협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일단 같이 지내며 돈 문제부터 정리하라고 조언하는 변호사들의 코멘트를 보면서, 이건 낭만적인 로맨틱 코미디 소재가 아니라 그냥 각자도생의 생존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소재를 다시 들여다보니, 그때는 개인의 특이한 사정으로 보였던 일이 지금은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로 커져 있었다. 결국 이혼도, 그 이후의 삶도 감정보다 돈이 먼저 결정하는 시대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이번엔 예전처럼 가볍게만 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