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여름 쿨토시, 영국도 시작됐다

안녕하세요. 영국에서 7년 거주하며 국제학교 IB 한국어 강사로 일했고 브리스톨에서 석사까지 마친, 지금은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브리스톨 언니입니다. 오늘은 한국의 쿨토시 문화가 영국에서도 시작된 이야기를 해볼게요.


몇 년 전 정기적으로 만나던 영국 할머니가 한국 여행 후기를 이야기하다가 물으셨다. "한국 사람들은 왜 다들 흰장갑을 끼는 거야?" 택시 기사, 백화점 주차 안내원까지 이곳저곳에서 흰장갑을 봤는데 그 정체가 궁금했다고 하셨다. 나는 그때 자외선 차단, 시인성, 서비스업의 준비된 이미지까지 세 가지 이유를 떠올려 답해드렸다.

그때 할머니께 드린 세 가지 답

정리하면 이랬다. 하나, 운전이나 등산 같은 야외 활동에서 피부가 타는 걸 막기 위해서. 둘, 주차 안내원이나 교통정리 경찰관처럼 사인을 눈에 잘 띄게 하려고. 셋, 대중교통 기사나 백화점 안내원처럼 서비스업 종사자가 준비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 여기에 결혼식·장례식·단체 행사에서의 예복용 착용까지 더하면, 흰장갑은 정말 한국 어디서나 마주치는 물건이었다.

요즘 다시 생각해보니, 그 흰장갑을 잘 못 본다

그런데 최근에 이 얘기가 다시 떠올라서 찾아보다가 알았다. 요즘은 예전만큼 그 흰 면장갑을 낀 운전자를 길에서 보기가 어렵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게 있었다. 바로 쿨토시다.

여름철 운전자, 골프·등산 인구 사이에서 자외선 차단용 토시가 완전히 대세로 자리 잡았다. 요즘 나오는 제품들은 자외선 차단 지수(UPF) 50 이상을 내세우고, 봉제선 없이 매끈하게 만들어 압박 자국이 안 남는 '심리스' 방식까지 경쟁하고 있다. 손등까지 덮는 손등형, 냉감 소재를 쓴 쿨토시까지 종류도 다양해졌다. 예전에 흰 면장갑 하나로 퉁쳤던 자외선 차단이, 이제는 팔 전체를 감싸는 훨씬 전문화된 장비로 발전한 셈이다.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얇은 면장갑은 손등까지만 가려줬지, 팔뚝은 그대로 뙤약볕에 노출됐으니까. 기술이 좋아지면서 더 넓은 부위를, 더 시원하게 가릴 수 있는 대안이 나온 거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옮겨간 거다. 운전면허 학원 강사님들이 챙 넓은 모자에 팔토시, 장갑까지 중무장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우스갯소리로 들은 적이 있는데, 이제는 그 중무장의 구성 자체가 흰장갑에서 쿨토시로 세대교체가 된 셈이다.

그런데 영국은 어떨까 — 이제 막 시작된 이야기

할머니의 질문 자체가 "영국엔 이런 게 없다"는 전제에서 나온 거였다. 그럼 영국은 지금도 그대로일까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뜻밖에도 영국 쪽에서 작은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2026년 영국은 기록적인 더위를 겪었다. 5월에 이미 관측 사상 가장 더운 5월을 찍더니, 6월 22일엔 잉글랜드 중남부와 웨일스 일부에 '레드 익스트림 히트' 경보가 내려지고 최고 39도까지 치솟았다. 이 정도 더위는 영국인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고, 그러면서 처음으로 '운전자 자외선 노출'이 진지한 건강 이슈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특히 눈에 띈 게 "화이트 밴 탠(white van tan)"이라는 표현이었다. 매일 같은 방향으로 운전하는 배달·화물 기사들의 오른쪽 팔과 얼굴만 유독 햇볕에 그을리고 손상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인데, 피부과 전문의들이 이걸 "만성적이고 불균형한 자외선 노출"이라며 경고하고 나섰다. 자외선차단 전문 업체들과 멜라노마 자선단체들은 운전자들에게 UPF50+ 소재의 장갑이나 소매를 착용하라고 권하기 시작했고, 창문을 닫고 운전해도 자외선A는 최대 50%까지 투과된다는 연구 결과까지 근거로 들었다.

물론 아직 한국의 쿨토시처럼 대중화된 건 전혀 아니다. 관련 제품을 파는 곳도 피부과·자선단체 연계의 전문 브랜드 정도이지, 마트에서 흔히 사는 물건은 아니다. 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그런 걸 왜 끼냐"고 신기해하던 나라에서, 이제 "운전할 때 장갑을 껴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자외선 노출 습관이라는 게 결국 그 나라 날씨가 만드는 거구나 싶다.

대신 흰장갑은 이제 '의식'에만 남았다

재미있는 건, 흰장갑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 쓰임이 좁혀졌다는 거다. 요즘 온라인에서 흰장갑을 검색하면 대부분 "행사용", "예식용"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결혼식 부케를 받쳐 들 때, 장례식에서, 졸업식이나 단체 행사의 진행요원이 착용할 때처럼, 일상의 실용품이 아니라 격식을 갖추는 의례용 소품으로 자리가 좁혀진 거다.

예전 글에서 언급했던 도서관·박물관의 흰장갑 규정은 지금도 그대로다. 오래된 귀중 자료를 다룰 때는 여전히 흰장갑이 필수고, 반대로 손상 위험이 있는 오래된 책은 오히려 맨손으로 다뤄야 한다는 규정도 여전하다. 이 부분만큼은 시대가 바뀌어도 그대로였다.

지금 할머니가 다시 물으신다면

그때는 "한국인들은 왜 흰장갑을 끼냐"는 질문에 세 가지 이유를 댔지만, 지금 다시 그 질문을 받는다면 답이 조금 달라질 것 같다. "예전엔 그랬는데, 요즘은 운전할 때 흰장갑 대신 쿨토시를 끼고, 흰장갑은 결혼식이나 장례식처럼 격식 있는 자리에서만 봐요"라고. 그리고 이렇게 되물어보고 싶다. "그런데 할머니, 요즘 영국도 기록적인 폭염 때문에 운전자들한테 자외선 차단 장갑 끼라는 얘기가 나오던데, 거기도 곧 비슷해지는 거 아니에요?"

문화는 이렇게 조용히 옷을 갈아입는구나 싶다. 없어진 게 아니라, 자리를 옮긴 거였고, 없던 나라에도 날씨가 바뀌면 결국 비슷한 게 생기는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