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이혼 목격 ""딸을 데려가 주세요"

15년 전 나는 영국인 커플의 이별을 지켜보고 글을 쓴 적이 있다. 3년을 동거하며 남자 쪽 가족 행사에 다 참석할 정도로 가까웠던 여자친구에게, 남자는 어느 날 "행복하지 않았다"며 이별을 선언했다. 여자가 믿지 않고 버티자 남자는 집을 나가버렸고, 일주일 후에야 남자의 부모가 사태를 알고 나서면서 다들 두 사람이 헤어졌다는 걸 알게 됐다. 결정적인 장면은 남자가 여자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한 말이었다. "우리는 이제 끝났으니, 딸을 데리고 가 주세요." 그 후 여자의 부모가 딸을 데리러 왔고, 그걸로 상황은 일단락됐다.

그때 나는 이걸 "쿨하다 못해 냉정하다"고 봤다. 부모는 이별이 다 끝난 뒤에야 등장해서 뒷수습만 하는, 철저히 당사자 둘만의 일이라는 구도였으니까.

그때 내가 목격한 '쿨함'

당시 댓글 반응도 지금 다시 보니 재미있다. "한국이었으면 여자 부모가 쫓아가서 남자한테 분풀이했을 거다", "우리나라 정서로는 이해 안 간다"는 반응이 많았다. 나 역시 그 글 말미에 "한국이었다면 부모들이 쫓아가서 분풀이를 하거나, 다시 살라고 타일렀을까"라고 물었었다. 그때는 한국의 부모란 자식의 연애·결혼·이별에 개입하는 게 당연했고, 영국은 그 반대라고 생각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정말 비슷해지고 있을까

최근 이 글을 다시 보다가, 요즘 한국은 좀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 자료를 찾아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처음 짐작했던 것과는 결이 좀 달랐다.

가장 눈에 띈 건 황혼이혼 통계였다. 60세 이상 부부의 이혼이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전문가들은 그 배경으로 "자녀 세대가 부모에게 무조건적인 결혼 유지를 강요하기보다 개인의 행복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커졌다"는 점을 꼽았다. 예전 같으면 자식들이 나서서 "그래도 참고 사시라"고 말렸을 상황을, 이제는 자식들이 오히려 부모의 결정을 지지하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거다.

부모가 '말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직접 '나서는' 경우도 많더라

젊은 부부의 이혼을 다룬 다른 글에서는 또 다른 각도가 보였다.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의 세대 차이를 "150년"에 비유한 표현이 있었는데, 그만큼 사고방식의 격차가 크다 보니 신혼부부 사이에서도 쉽게 이혼 얘기가 나온다는 분석이었다. 전국 통계나 기사 자료로 확인되는 건 딱 여기까지였다 — 부모가 예전만큼 결혼 유지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정도.

그런데 내 주변을 돌아보면 얘기가 좀 더 나아간다.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는 부모가 자식의 결혼 뿐 아니라 이혼에도 직접 나서는 사례를 심심찮게 본다.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양가 부모가 먼저 이혼을 부추긴 경우도 내 주변에 꽤 있다. 생각해보면 어색한 일도 아니다. 애초에 한국은 결혼 자체를 두 집안이 성사 시키는 문화가 뿌리 깊은 곳이었으니, 그 결혼을 정리하는 국면에서도 똑같은 손이 다시 나서는 건 자연스러운 연장선일 수 있다. 결혼을 시켰던 그 열의가, 이제는 이혼을 시키는 쪽으로 방향만 바꿔서 작동하는 셈이다.

그러니 정리하면 이렇다. 통계로 잡히는 건 "부모가 참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완곡한 흐름이지만, 실제 생활 반경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보다 훨씬 적극적이다. 자녀 부부가 흔들릴 때 양가가 개입해서 아예 결론을 함께 내려버리는 것. 예전엔 그 개입의 방향이 "참고 살아라"였다면, 지금은 "그만 살아도 된다"로 방향 자체가 바뀐 집들이 늘고 있는 거다.

그래도 영국과는 다른 지점이 남아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영국식이 된 것도 아니다. 영국의 그 사건에서 부모는 정말 "사후 수습" 역할에 머물렀다 — 이미 끝난 관계를 정리하러 왔을 뿐, 끝낼지 말지를 결정하는 자리에는 없었다. 반면 한국은 양가 부모가 그 결정 자체에 함께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즉 영국은 개입의 '시점'이 이별 이후로 확실히 좁혀져 있는데, 한국은 그 개입이 결정의 순간까지 파고든다는 점에서 여전히 큰 차이가 있다.

그때는 냉정하다고 봤는데, 지금은 각자의 방식으로 보인다

15년 전엔 그 남자의 "딸을 데려가 주세요"라는 말이 낯설고 차갑게 들렸다. 지금 다시 보면, 그 말은 여전히 한국에서 나오기 어려운 말인 것 같다. 다만 그 이유가 예전과는 달라졌다. 그때는 부모가 자식 부부를 어떻게든 붙여 놓으려 했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부모가 그 결정 안에 깊숙이 들어와 함께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다. 영국은 부모의 역할을 이별 '이후'로 좁혀 놓았고, 한국은 그 역할을 이별의 순간 '안'으로 옮겨 놓았을 뿐, 어느 쪽도 부모가 완전히 빠지지는 않았다. 15년이 지나도 그건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