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학생도 방학에는 알바한다

안녕하세요. 영국에서 7년 거주하며 국제학교 IB 한국어 강사로 일했고 브리스톨에서 석사까지 마친, 지금은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브리스톨 언니입니다. 오늘은 영국 대학생들이 방학마다 알바하는 이야기를 해볼게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나는 영국 여대생들과 한 집에서 산 적이 있다. 시험이 끝나던 날 그녀들이 보인 반응이 아직도 기억난다. 시험이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짐을 미친 듯이 싸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엔 집이 텅 비어 있었다. 그러고는 개강 일주일 전에야 다시 나타났다.

그때는 그냥 신기했는데, 살아보니 이게 영국 대학생 방학의 표준 패턴이더라.

한국보다 짧은 방학, 그런데 총량은 비슷하다

영국 대학의 겨울 방학은 크리스마스를 끼고 한 달 정도다. 한국의 길고 긴 겨울 방학에 비하면 짧다. 대신 학기 중간에 한 주씩 쉬는 리딩 위크가 있고, 3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3~4주짜리 부활절 방학이 따로 있다. 다 더하면 한국 대학생의 방학 일수와 별 차이가 없다.

5~6월 시험이 끝나면 기숙사생들은 곧장 짐을 싼다. 기숙사에서 퇴실해야 하니까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짐이 많아서 버스나 기차로는 감당이 안 되니, 보통 부모님이 차를 몰고 데리러 온다.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간 학생들은 몇 주 정도는 그동안 못 본 가족, 동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 에세이와 시험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엄마 밥으로 회복하는 시기랄까.

방학 내내 놀지는 않더라

그런데 그게 방학 전체는 아니었다. 내가 직접 보고 들은 걸로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하나, 알바다. 우리 교회 청년들만 봐도 그랬다. 방학이면 부모님 집으로 돌아와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단기 알바를 뛴다. 특히 여름은 세일 시즌에 직원들 휴가까지 겹쳐서 상점마다 구인이 쏟아지는 때라, 자리 나기가 무섭게 채워진다. 이미 학기 중에 일을 하던 학생들은 아예 부모님 집에 몇 주만 다녀오고 바로 돌아와 방학 내내 일한다. 영국은 시급이 높은 편이라, 석 달만 풀타임(주 30~35시간)으로 일해도 한 학기 생활비가 나오고 남는다. 대신 방학 다운 방학은 없는 셈이지만.

둘, 여행이다. 영국에서 유럽은 옆 동네 드나들듯 가깝다. 그래서 현지인 대부분이 유럽 여행 경험이 있고, 여름휴가는 거의 필수 코스다. 내가 아는 대학 2학년 학생은 여자친구와 한 달짜리 유럽 여행을 계획하면서 그 경비를 벌려고 몇 달째 알바 중이었다. 국제 커플이면 방학이 곧 상봉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일본인 여자친구를 둔 영국 학생 하나는 겨울 방학 내내 일본에 가 있었다. 부모님의 고향, 그러니까 조부모님 댁에 온 가족이 모이는 경우도 흔했다. 웨일스나 스코틀랜드가 고향인 교회 지인은 방학마다 온 가족이 그쪽으로 이동했다.

셋, 인턴십이다. 이게 가장 눈에 띄게 늘어난 흐름이었다. 영국 회사들은 채용할 때 관련 업무 경험을 상당히 따진다. 그래서 졸업 후 취업을 염두에 둔 2학년들부터 방학마다 인턴십에 매달린다. 여름이면 런던으로 얼마나 많은 학생이 몰리는지, 경쟁이 상당하다. 성적이 안 되면 지원 자체가 막히는 경우도 많아서, 1학년 때부터 학점 관리를 신경 쓴다. 영국에서 자리를 못 구한 유학생들은 아예 본국으로 돌아가 인턴십을 하기도 했다.

10년이 지나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

이 관찰을 처음 했던 게 벌써 20년도 더 전이다. 그사이 브렉시트를 지나고, 물가가 치솟고, 대학생 알바 자리는 더 구하기 힘들어졌다는 이야기를 요즘도 듣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구조 자체는 그대로다. 알바로 생활비를 메우고, 여행으로 숨을 돌리고, 인턴십으로 스펙을 쌓는 삼각형. 오히려 요즘은 원격 인턴십이나 온라인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더해지면서, 이 삼각형이 더 촘촘해졌으면 했지 헐거워지진 않은 것 같다.

결국 영국이든 한국이든, 대학생의 방학은 순수한 휴식이 아니라 다음 학기, 혹은 졸업 이후를 준비하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이 씁쓸하면서도, 어느 나라 청춘이든 다 비슷하게 애쓰며 산다는 게 묘하게 위안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