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집에 얹혀사는 불청객, mouldy와의 전쟁
안녕하세요. 영국에서 7년 거주하며 국제학교 IB 한국어 강사로 일했고 브리스톨에서 석사까지 마친, 지금은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브리스톨 언니입니다. 오늘은 영국 집에 얹혀살던 불청객 mouldy와의 전쟁 이야기를 해볼게요.
내가 영국에서 가장 많이 산 물건 순위를 매기면, 1위는 아마 락스일 거다.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이 집에 나보다 먼저 살고 있던 불청객 얘기부터 해야 한다. 이름하여 마울디(mouldy).
첫 대면 — 주인집 아줌마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그것
이사 온 지 한 달째, 집세를 받으러 온 주인 아줌마가 갑자기 나를 화장실로 이끌었다. 욕조 천장을 가리키며 까맣게 점 박힌 자국을 보여주더니, 웃으며 한마디 했다. "Mouldy? Funny word."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따라 웃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곰팡이였다. 뜨거운 물의 수증기가 벽을 타고 올라가 만든, 화장실 천장의 검은 얼룩. 그날 나는 내 평생 첫 마울디를 소개받았다.
지금 사는 집은 200년이 넘은 목조 건물이라 천장까지 낮아서, 마울디한테는 그야말로 최적의 서식지다. 다른 집보다 훨씬 자주, 훨씬 뻔뻔하게 찾아온다.
1라운드 — 그의 서식지 조사
마울디는 아무 데나 자리 잡지 않는다. 좋아하는 자리가 따로 있다. 욕조 천장, 창틀, 심지어 커튼까지. 특히 겨울에 왕성해지는데, 온수 샤워를 하면 할수록 습기가 쌓이고, 그게 곧 그의 번식 신호탄이 된다. 우리 집 룰은 하나다. 욕조 밖으로는 절대 물을 내보내면 안 된다. 목조 건물이라 물이 밖으로 새면 큰일이라, 세면대와 변기, 욕조만 물로 살살 청소해야 한다. 한국에서 하던 것처럼 샤워기로 벽과 바닥을 시원하게 뿌려대는 청소는 여기선 상상도 못 한다. 청소를 하고도 개운하지가 않은 이유다.
2라운드 — 무기는 락스, 전술은 힘 조절
마울디를 상대하는 무기는 명확하다. 브리치, 우리로 치면 락스. 휴지나 키친타월에 브리치를 조금 묻혀서 힘줘서 닦으면 검은 점들이 순순히 사라진다. 문제는 이게 일회성 승리라는 거다. 방심하면 며칠 안에 그가 다시 나타난다. 마울디와의 전쟁에 휴전이란 없고, 정기적인 순찰과 즉각 진압만 있을 뿐이다.
재미있는 건 이 단어의 활용 범위다. 화장실 벽에 피는 것도, 오래된 빵이나 과일 겉면에 하얗게 앉은 것도, 냉장고 구석에서 발견되는 정체불명의 초록빛 얼룩도 전부 mouldy다. 처음엔 화장실 전용 단어인 줄 알았는데, 살다 보니 이 나라에서 '축축하고 방치된 곳에 피는 모든 것'을 통칭하는 만능 단어였다. 그만큼 영국인들의 일상에 이 녀석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3라운드 — 신랑의 방심, 마울디의 대반격
원래 화장실 청소는 신랑 담당이었다. 그런데 요즘 공부한다고 신경을 놓아버린 사이, 마울디가 세를 확장했다. 벽만 점령하던 그가 이제는 창틀도, 커튼도 접수해 버린 거다. 신랑에게 이 상황을 보여주니 그도 놀란 눈치였다. 이번 주말엔 둘이 총출동해서 완전 진압에 나서기로 했다. 곰팡이 앞에서는 부부 싸움도 잠시 미뤄두고 한 팀이 되는 거다.
마울디는 계속 돌아온다 — 그래서 나는 이렇게 지낸다
몇 년째 살아보니 알겠다. 이 전쟁에 완전한 승리는 없다는 걸. 영국의 습한 날씨와 오래된 건물 구조, 그리고 매일의 온수 샤워가 있는 한, 마울디는 언젠가 반드시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그를 없애야 할 적이라기보다, 정기적으로 관리해야 할 이 집의 룸메이트쯤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국 마트에서는 곰팡이 제거제가 특수 코너에 조용히 놓여 있다면, 영국 대형 마트에서는 한 매대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이 나라 사람들 모두가 마울디와 동거 중이라는 뜻일 거다. 청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 이제는 정기 순찰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창틀은 일주일에 한 번, 화장실은 샤워할 때마다 물기를 닦아내고, 겨울엔 조금 춥더라도 창문을 자주 열어 환기를 시킨다. 완벽하게 없애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나니, 오히려 관리가 더 수월해졌다.
돌이켜보면 그와의 첫 만남에서 나는 그저 부끄럽고 당황스러웠는데, 몇 년을 살고 나니 이제는 이 이야기를 웃으며 할 수 있게 됐다. 영국에서 오래 산 사람이라면 다들 마울디와의 무용담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거다. 이번 주말 신랑과 함께할 대청소도, 승리 선언이 아니라 그저 다음 라운드를 준비하는 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