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고 굵게 한두 곳만" — 15년 전 난 이미 요즘 여행 트렌드였다

예전에 나는 영국 어학 연수생들에게 유럽 여행 노하우를 정리해준 적이 있다. 핵심은 두 가지였다. 코스 시작 전이 아니라 끝난 뒤에 여행을 가라는 것, 그리고 한 번에 여러 나라를 찍고 다니는 대신 코스 중간 중간 짧고 굵게 한두 곳만 다녀오라는 것. 한국인 특유의 "유명 여행지 찍기식" 여행 습관을 경계하라는 조언이었다.

그런데 요즘 유럽 여행 트렌드를 다시 찾아보니, 그때 내가 경계했던 그 "찍기식 여행"이 완전히 다른 이름을 달고 돌아와 있었다.

그때 내가 했던 조언

당시 논리는 단순했다. 코스 전에 미리 여행을 다녀오면 심신이 지쳐서 수업 적응이 늦어지고, 장기간 여러 나라를 도는 여행은 기분 전환이 아니라 노동이 된다는 거였다. 시험을 앞두고 여행 다녀오면 그동안 쌓은 영어 감각이 날아간다는 것도 꼭 짚었다. 그래서 가까운 나라는 주말 2박 3일, 먼 곳은 휴가를 내서 4박 5일 정도로, 딱 필요한 만큼만 다녀오라고 했었다.

요즘 유럽 여행은 두 갈래로 완전히 갈라졌다

최근 자료를 보니 흥미로운 대조가 보였다. 한쪽에는 "트래블 맥싱(Travel Maxxing)"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유럽 Z세대 사이에서 뜨는 트렌드인데, 휴양지 수영장에 누워 여유를 즐기던 전통적인 방식 대신 한정된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경험을 욱여넣는 방식이다. (출처: 히치하이커) 말하자면 내가 그때 경계했던 "찍기식 여행"이 이제는 의도된 라이프 스타일로 재포장된 셈이다.

반대쪽에는 정확히 내가 권했던 방향과 닮은 흐름이 있다. 소도시 여행콰이어트케이션(조용한 여행)이다. 대도시 명소를 훑는 대신 한적한 중세 소도시에 머물며 여유를 즐기는 방식, 디지털 피로와 번아웃을 피해 조용히 도피하는 여행이 2026년 여행 키워드로 꼽히고 있었다. (출처: 트래비 매거진, 트립닷컴) 그 배경에는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있다. 유명 도시들이 관광객 과밀로 몸살을 앓으면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덜 붐비는 곳, 더 깊이 머무는 방식을 찾기 시작한 거다.

내 조언은 사실 이미 후자 쪽이었다

다시 읽어보니, 그때 내가 했던 "짧고 굵게 한두 곳만"이라는 조언은 결국 지금의 소도시·콰이어트케이션 흐름과 결이 같았다. 다 보려 하지 말고, 한 곳에서 제대로 쉬고 오라는 게 핵심이었으니까. 오버투어리즘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기도 전에, 나는 그냥 "체력이 못 버티니까"라는 지극히 실용적인 이유로 같은 결론에 도달했던 거다.

그리고 지금은 그 조언이 그때보다 더 유효해졌다. 요즘 유럽 인기 도시들은 숙박세를 새로 걷기 시작했고, 국경을 넘을 때마다 예전보다 훨씬 까다로운 입국 절차를 거쳐야 한다. 오버투어리즘과 여행 소비 패턴 변화가 맞물린 결과다. (출처: Mastercard Travel Trendlines 2026) (이 부분은 영국 ETA·EU EES·ETIAS 글영국 숙박세 총정리에 자세히 정리해뒀다.) 여러 나라를 짧게 찍고 다니는 여행이 예전보다 훨씬 피곤하고 돈도 더 드는 시대가 된 거다.

그래서 다시 정리하는 조언

결국 지금 어학 연수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그때와 똑같다. 코스가 끝난 뒤에, 욕심 내지 말고 한두 곳만 제대로. 다만 이제는 그 이유에 하나가 더 추가됐다. 체력 때문만이 아니라, 국경 넘기 자체가 번거로워진 시대라서, 여러 나라를 찍고 다니는 여행이 예전보다 훨씬 비효율적이라는 것. 15년 전엔 내 나름의 경험이었던 조언이, 지금은 트렌드 리포트와 현실적인 이유까지 갖춘 조언이 됐다.

📌 참고 출처: 히치하이커, 트래비 매거진, 트립닷컴, Mastercard Travel Trendlines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