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vs 한국, 100살까지 산다면 30대 결혼도 70년 프로젝트

안녕하세요. 영국에서 7년 거주하며 국제학교 IB 한국어 강사로 일했고 브리스톨에서 석사까지 마친, 지금은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브리스톨 언니입니다. 오늘은 100세 시대를 맞아 영국과 한국의 결혼관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몇 년 전 영어 수업에서 "스무 살은 결혼하기 좋은 나이인가"를 두고 토론한 적이 있다. 폴란드·프랑스 친구와 한 조가 됐는데, 둘 다 각자의 애인과 몇 년째 동거 중이었고, 결혼은 절대 안 할 거라고 했다. 혼인증서에 얽매이기 싫다는 거였다. 그때 나는 갓 결혼한 신혼이었고, 그 얘기를 한참 듣다가 '내가 뭔가 잘못한 건가' 싶을 정도로 혼란스러워했다.

그런데 요즘 나는 그때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그때 그 친구들의 논리

폴란드 친구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사랑해서 같이 살고 싶으면 그냥 살면 되지, 혼인증서가 뭐가 중요해? 이혼하면 이혼녀라는 딱지가 붙는 게 싫어."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결혼을 낭만이 아니라 형식으로만 보는 태도가 좀 차갑게 느껴졌었다. 그때 함께 있던 40대 스페인·터키 어른들은 오히려 스무 살 결혼에 찬성했고, 세대와 국적에 따라 입장이 완전히 갈렸던 것도 인상적이었다.

요즘 내가 하는 계산

요즘은 평균 수명 100세 시대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그 말을 곱씹다 문득 이런 계산을 해봤다. 30대에 결혼한다고 치면, 100살까지 산다는 가정 아래 앞으로 70년 가까이를 그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70년이면 결혼 자체가 인생에서 가장 긴 프로젝트가 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는 경우라면, 굳이 20대에 서둘러 결혼할 이유가 있을까. 30대든 40대든, 정말 확신이 설 때 결혼해도 늦지 않은 거 아닐까. 예전엔 "결혼 적령기"라는 말이 있었지만, 인생 자체가 길어진 지금은 그 적령기라는 개념도 다시 계산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찾아보니, 영국은 이미 그 계산대로 가고 있었다

이 생각을 하다가 문득 영국은 지금 어떤지 궁금해서 최신 통계를 찾아봤는데, 정말 그 방향 그대로였다. 영국의 초혼 평균 나이는 이제 남성 34.8세, 여성 33세까지 올라갔다. 내가 그 토론 수업을 들었던 시절보다도 한참 늦어진 수치다.

더 흥미로운 건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의 위상이다. 영국 통계청 최신 자료를 보면, 법적으로 혼인·시빙파트너십 상태인 성인 비율이 처음으로 50% 아래(49.5%)로 떨어졌다. 즉 지금 영국 성인의 절반 이상이 법적으로 미혼이거나 이혼·사별 상태라는 뜻이다.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의 비율은 10년 전 33.9%에서 지금 36.8%까지 늘었고, 혼인 없이 동거하는 인구도 590만 명에서 650만 명으로 늘었다. 변호사들은 이 흐름의 배경으로 생활비 위기와 결혼식 비용 부담을 함께 꼽았다.

몇 년 전 폴란드 친구가 혼자 유별난 소수처럼 보였다면, 지금은 그 친구의 선택이 영국 사회의 다수 흐름과 꽤 가까워 보인다.

그럼 요즘 한국은 어떨까

궁금해서 한국 통계도 같이 찾아봤는데, 결혼 나이만 놓고 보면 한국도 영국과 거의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2025년 기준 초혼 평균 나이가 남성 33.85세, 여성 31.62세까지 올라왔다. 20년 전인 2000년엔 남성 29.28세, 여성 26.49세였으니, 그사이 5년 가까이 늦어진 셈이다. 영국의 34.8세·33세와 비교해도 이제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따라잡았다.

다만 한국은 영국과 다른 지점이 하나 있다. 결혼 건수 자체는 오히려 2년 연속 늘고 있다는 거다. 2024년에 이어 2025년에도 혼인 건수가 늘었는데, 특히 30대 초반 연령층에서 증가폭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즉 결혼을 아예 안 하겠다는 흐름이라기보다, 늦게 하되 결국은 하는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동거를 대하는 인식만큼은 놀랍도록 달라졌다. 최근 조사에서 "결혼 준비 과정에서의 동거는 괜찮다"는 응답이 79.4%, "결혼해서 이혼하는 것보다 동거로 먼저 결정하는 게 현명하다"는 응답이 67%나 나왔다. "결혼을 전제로 한 동거"에 찬성한다는 응답도 60.9%였는데, 흥미롭게도 여성(63.8%)이 남성(57.9%)보다 더 개방적이었다. 프랑스의 팍스(PACS, 결혼과 동거 사이의 법적 동반자 제도)를 참고해 비슷한 제도를 만들자는 논의까지 나오는 걸 보면, 한국도 결혼과 동거 사이의 경계가 예전만큼 뚜렷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결혼식은 올리되 혼인신고는 미루거나 아예 안 하는 부부도 늘고 있다는데, 이것도 어떻게 보면 한국식으로 변형된 '동거 같은 결혼'인 셈이다.

그때는 이상해 보였던 것이, 지금은 계산이 맞아 보인다

그때 나는 동거를 선택한 친구들 앞에서 결혼한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은 착각에 빠졌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잘못이 아니라 그냥 각자의 인생 계산이 달랐던 것 뿐이다. 100년을 산다고 치면, 언제 누구와 어떤 형태로 함께할지는 훨씬 더 다양한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결혼이든 동거든, 이제는 그 선택 자체보다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계산이 더 중요해진 시대가 된 것 같다.

영국은 아예 결혼이라는 틀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늘고, 한국은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시기와 방식을 더 유연하게 조정하는 쪽으로 가는 것 같다. 방향은 조금 다르지만, 두 나라 모두 "정해진 나이에, 정해진 방식으로"라는 공식에서는 확실히 멀어지고 있다. 100세 시대의 계산법이 어느 나라에서든 비슷하게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