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엔 법이 어른이라 했는데, 쉰 살엔 아무도 안 물어본다

안녕하세요. 영국에서 7년 거주하며 국제학교 IB 한국어 강사로 일했고 브리스톨에서 석사까지 마친, 지금은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브리스톨 언니입니다. 오늘은 영국에서 쉰 살이 갖는 의미를 스물한 살과 비교해 이야기해볼게요.


몇 년 전 나는 영국의 21번째 생일이 왜 특별한지를 글로 쓴 적이 있다. 21살이 되면 술을 완전히 합법적으로 사고 마실 수 있어서, 그 나이대 영국 청년들이 클럽이나 바를 빌려 성인식처럼 파티를 연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만나는 사람마다 나한테 장난스럽게 "이게 네 21번째 생일이야?"라고 묻던 것도 생생하다. 나이 얘기를 회피하고 싶은 여자의 마음을 다들 알아서, 진짜 나이 대신 21살이라고 눙치고 넘어가는 게 일종의 놀이였다.

그런데 이번엔 완전히 다른 생일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남편이 올해 쉰이 된다. 그리고 나도 2년 후면 쉰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영국에서 쉰 살은 스물한 살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의미가 있을까.

스물한 살엔 법이 어른이라 했는데, 쉰 살엔 그런 게 없다

먼저 확실히 해둘 게 있다. 스물한 살은 법이 정해준 관문이었다. 그 날을 기점으로 술집과 클럽에서 신분증 검사 없이 술을 살 수 있게 되는, 명확한 제도적 전환점이었다. 그런데 쉰 살은 다르다. 영국 법 어디에도 쉰 살이 되면 뭔가 새로 허락되거나 바뀌는 조항은 없다. 운전면허도, 투표권도, 음주도 이미 오래전에 다 해결된 나이다. 법적으로는 그냥 평범한 하루다. 은퇴나 연금 얘기도 쉰이 아니라 훨씬 나중, 60대 이후에나 등장하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영국인들은 쉰을 유난히 크게 챙긴다

법이 아무 말도 안 하는데, 신기하게도 영국인들 사이에서 쉰 번째 생일은 다른 어떤 열 단위 생일보다 무겁게 다뤄진다. 흔히 "half century(반세기)"라고 부르고, 좀 더 캐주얼하게는 "the Big 5-0"이라고 한다. 마흔 살 생일도 크게 챙기긴 하지만, 쉰이 되면 그 규모와 진지함이 한 단계 더 올라간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여러 번 들었다. 몇 달 전부터 파티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사람도 많고, 검은 풍선이나 "over the hill(이제 내리막길)"이라고 놀리는 문구가 적힌 카드를 주고받는 유머러스한 전통도 있다. 마흔이 "아직 젊다"는 자기 위안이 가능한 나이라면, 쉰은 인생의 절반 지점을 공식적으로 통과했다는 걸 부정할 수 없게 만드는 나이인 것 같다.

법적 의미가 있던 스물한 살은 오히려 담백하게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 법적 의미가 없는 쉰 살 앞에서는 다들 한 번쯤 멈춰 서서 인생을 돌아본다는 게 재미있는 대비다. 제도가 나이를 규정해주지 않으니, 그 빈자리를 감정과 상징이 대신 채우는 셈이다. 21살은 "이제부터 뭘 할 수 있다"는 미래형 생일이었다면, 쉰 살은 "지금까지 뭘 해왔다"는 과거형 생일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나도 2년 후면 쉰이다

이 글을 쓰면서 계속 내 얘기가 겹쳐졌다. 몇 년 전 그 스물한 살 글을 쓸 때 나는 서른 즈음이었고, 나이 얘기 자체가 우스갯소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다르다. 남편의 쉰 번째 생일을 준비하면서, 나도 모르게 2년 후의 내 모습을 자꾸 그려보게 된다. 그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 시작한 이 블로그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스친다.

영국에서 쉰은 법이 아니라 사람들의 태도가 만든 무게 있는 생일이라는 걸 알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정해진 의미가 없다는 건, 그 의미를 내가 채워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올해 남편의 쉰 번째 생일엔, 스물한 살 때처럼 법이 허락한 자유를 축하하는 대신, 지금까지 함께 걸어온 반세기 가까운 시간을 그냥 담담히 축하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