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영국에서 7년 거주하며 국제학교 IB 한국어 강사로 일했고 브리스톨에서 석사까지 마친, 지금은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브리스톨 언니입니다. 오늘은 해를 그렇게 좋아하던 영국인들이 이번 폭염엔 두 손 든 이야기를 해볼게요.
요즘 한국 뉴스만 틀면 폭염 얘기다. 에어컨 없이는 한 발짝도 못 나가겠는 날씨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영국에서 살던 시절이 자꾸 떠올랐다. 정확히는, 영국인들이 해만 뜨면 잔디밭에 벌러덩 눕던 그 장면이. 그리고 최근에 영국도 이번 여름 엄청난 더위에 시달렸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햇빛이 무서워졌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재미있는 반전이 일어났다. 나는 영국에서 7년 사는 동안 해를 보면 반가웠던 사람이다. 하늘이 파랗고 해가 쨍하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흐리고 우중충한 날이 많은 나라에서 살다 보니, 해가 나는 날 자체가 일종의 이벤트였다. 그런데 요즘 한국 여름 뙤약볕 아래 서 있으면 숨이 턱 막힌다. 잠깐만 걸어도 땀이 비 오듯 하고, 자외선이 피부에 내리꽂히는 게 느껴질 정도다. 영국에서는 그렇게 반갑던 해가, 한국에서는 어느새 피하고 싶은 존재가 됐다. 같은 사람이 같은 해를 이렇게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아마 해의 '희소성'이 다르기 때문이겠지 — 귀하면 반갑고, 흔하다 못해 매일 쏟아지면 버거워지는 거다.
영국인들의 햇빛 사랑, 그땐 정말 유별났다
돌이켜보면 영국에서의 햇빛 사랑은 정말 각별했다. 3월만 돼도 17~20도에 반팔을 꺼내 입었고, 대학 캠퍼스 잔디밭엔 책 읽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그냥 누워만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본격적으로 더워지는 여름이면 공원이며 정원이며 할 것 없이 비키니 차림으로 돗자리를 깔고 서로 오일을 발라주며 선탠을 하는 여학생들을 보고 나는 매번 놀랐다. 캔터베리의 어느 정원에서는 친구와 벤치에 앉아 있다가, 옆에 돗자리를 깐 어린 커플이 너무 진하게 애정 행각을 벌이는 바람에 자리를 슬쩍 옮겼던 기억도 있다.
반대로 나는 그 강한 자외선이 무서워서 늘 가디건과 선크림, 선글라스로 중무장을 했다. 한번은 어깨가 파인 옷을 입고 2주쯤 다녔더니 없던 점이 팔과 어깨에 잔뜩 생긴 걸 보고 기겁한 적도 있다. 영국인 아주머니는 그런 나를 보며 "동양 여자들은 왜 그렇게 해를 싫어하냐"는 표정을 짓곤 했다. 그 정도로 그들에게 햇빛은 쬐지 못해 안달인 귀한 존재였다.
그 영국인들도, 이번엔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런데 올해 영국 소식을 들으니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5월에 이미 켄트 가든스에서 35도가 넘는 기록적인 더위가 찍혔고, 6월엔 노퍽 지역이 37.7도까지 올랐다. 5~6월 폭염으로 인한 사망 추정치가 2천 명을 넘는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7월에는 잉글랜드 남부가 관측 이래 가장 건조한 7월을 기록했고, 산불까지 번졌다. 켄트 일부 지역은 물 부족으로 호스파이프 사용 제한령까지 내려졌다고 한다.
에어컨이 흔치 않은 나라에서 이 정도 더위라니,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잔디밭에 누워 여유롭게 해를 즐기던 그 사람들이, 이번엔 폭염 경보에 벌벌 떨며 응급 전화가 폭주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그렇게 해를 사랑하던 사람들도 결국 정도가 있었던 거다. 해가 귀해서 좋아했던 거지, 해에 시달리고 싶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이 소식을 들으며 나는 묘한 위안을 받았다. 나만 해를 유난스럽게 피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나 해를 반기던 사람들조차 결국 백기를 든 걸 보면서, 더위 앞에서는 다들 평등하구나 싶었다. 좋아하는 것도 정도가 있다는 진리를, 영국인들이 이번 여름 몸소 증명해 준 셈이다.
지금 한국에서 폭염에 시달릴 때마다, 나는 영국 잔디밭에 눕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도 지금쯤 그늘을 찾아다니고 있겠지. 영국에 있었으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 얘들아, 이게 바로 한국 여름이거든~~~ 이제 알겠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