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영국에서 7년 거주하며 국제학교 IB 한국어 강사로 일했고 브리스톨에서 석사까지 마친, 지금은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브리스톨 언니입니다. 오늘은 한국의 "임신 유세"라는 말이 영국에는 왜 없는지 이야기해볼게요.
임신하기 전, 신랑은 나한테 종종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임신 유세가 무척 심할 것 같아.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나를 다 시키겠지." 반은 농담, 반은 진심이었던 그 말은 결국 씨가 됐다. 입덧이 심했던 임신 초기부터, 나는 정말로 집안일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나중엔 "우리 아기가 까롱이가 먹고 싶대"라며 태아 핑계까지 대다가, 신랑한테 "애 핑계 대지 말고 네가 먹고 싶다고 해"라는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임신 유세'는 그때도 나를 웃게 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참 유난이었다. 시어머니는 지금도 가끔 "나 임신했을 때 그렇게 갈비가 먹고 싶었는데 안 사주더라"며 몇십 년 전 서운함을 꺼내신다. 그 정도로 한국에서 임신 유세는 며느리와 아내들 사이에서 거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다. 임신했을 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마음껏 부려보겠냐는 주변의 부추김도 한 몫 했다. 막달 즈음엔 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뱃속 태동이 유독 강하게 느껴졌는데, 그 이후로 신랑은 내가 뭘 먹고 싶다고만 하면 두말 없이 사다 주기 시작했다. 임신 유세를 받아주지 않는 남편을 둔 아내들이 그 서운함을 오래도록 곱씹는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워낙 많이 들었던 터라, 나는 오히려 운이 좋았던 축에 속했다.
영국엔 애초에 그런 게 없었다
그런데 영국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 얘기를 나누면서 완전히 다른 반응을 마주했다. 출산 경험이 있는 영국 할머니, 아주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임신 유세 비슷한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비슷한 또래의 영국인 친구가 임신했을 때 넌지시 물어봤더니, 그런 게 있냐며 오히려 신기해했다. 남편에게 특별히 뭔가를 요구하거나 조른다는 개념 자체가 낯선 눈치였다.
그때는 그냥 문화 차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아마 서구권은 원래 개인주의가 강해서 임신도 '내가 알아서 견디는 일'로 여기는 게 아닐까 싶었다. 실제로 임신·출산 카페를 보면, 서양권 남편을 둔 여자들이 임신 유세가 전혀 안 통해서 서운했다는 글도 종종 보였으니까.
그런데 요즘 한국은 달라지고 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다시 들여다보다가 흥미로운 걸 발견했다. 한국의 최근 통계를 보니, 남성 육아휴직급여 수급자가 전년 대비 60% 넘게 늘었고, 전체 육아휴직 수급자 중 남성 비율이 36.5%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게다가 올해 하반기부터는 배우자 출산휴가를 출산 이후가 아니라 출산 예정일 50일 전부터 쓸 수 있게 제도가 바뀐다. 산전 검진에 같이 가고, 출산을 함께 준비하라는 취지다. 배우자가 유산이나 사산을 겪었을 때 쓸 수 있는 휴가까지 새로 생겼다고 하니,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했을 변화다.
이 소식을 보면서 묘한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아내가 유세를 부려야만 남편이 관심을 갖던 일이,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제도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거다. 남편의 임신 기간 참여가 아내의 애교나 협상력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보장받는 권리가 되어가는 셈이다. 어쩌면 영국 친구들이 임신 유세를 이해 못 했던 이유도, 애초에 그쪽에서는 파트너의 참여가 조르지 않아도 되는 당연한 몫으로 여겨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결국 한국이 지금 향하고 있는 방향이, 그때 내가 신기하게 봤던 영국의 모습과 은근히 닮아 있다는 게 재미있다.
그때는 임신 유세를 "부정적인 말보다는 임신 애교로 부르자"며 애써 순화했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애초에 유세든 애교든 이름 붙일 필요조차 없는 게 맞는 방향 같다. 남편이 아내의 임신과 출산 과정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게 조르고 얻어내야 하는 특혜가 아니라 기본값이 되는 것. 제도가 먼저 그 기본값을 만들어주면, 말로 설득하고 애교로 조르는 수고는 자연히 줄어들 거다. 한국이 그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게, 나는 꽤 반갑다. 다음에 누군가 임신하면, "유세 좀 그만 부려"라는 핀잔보다 "당연히 같이해야지"라는 말을 먼저 듣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