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말차 음료가 너무 먹고 싶다 (13년 전엔 반대였다)

안녕하세요. 영국에서 7년 거주하며 국제학교 IB 한국어 강사로 일했고 브리스톨에서 석사까지 마친, 지금은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브리스톨 언니입니다. 오늘은 영국 말차 음료가 사무치게 그리워진 이야기를 해볼게요.


어젯밤 나는 인스타그램을 넘기다가 손가락이 멈췄다. 내가 석사 학위를 했던 영국 Bristol Blank Street라는 카페에서 찍은 스트로베리 말차 사진이었다. 연분홍과 진초록이 그러데이션으로 층을 이룬, 보기만 해도 시원한 그 한 잔. 순간 나는 정말 진지하게 항공권 검색창을 열 뻔했다.

그리고 곧바로 나 이 감정, 예전에도 느껴본 적 있는데. 방향만 정반대로.

2013년, 나는 반대 방향으로 그리워했다

영국에 살던 시절 나는 녹차에 환장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시절 영국 베이커리에는 녹차 가루로 만든 것 자체가 없었다. 여름이면 한국 친구들이 SNS에 올리는 녹차 빙수, 녹차 프라푸치노, 녹차 케이크 사진을 보면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싶다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녹차 비슷한 색이라는 이유로 피스타치오나 민트로 아쉬움을 달래던 게 그 시절 나였다. 가끔씩은 엄마에게 녹차 가루를 보내 달라고 SOS를 치기도 했다.

한번은 녹차 케이크를 먹겠다고 런던까지 원정을 간 적도 있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어느 베이커리에서 파는 녹차 케이크 하나를 먹겠다고,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그 케이크를 몇 입 만에 해치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마카롱이며 다른 케이크들도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예뻤는데, 그 많은 것 중에서도 결국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딱 하나, 초록빛 그 조각이었다. 그만큼 그때 영국에서 녹차는 정말 희귀한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다

그런데 이번엔 한국에 있는 내가, 영국 소식을 보며 못 먹어서 억울해 하고 있다. 몇 년 사이 영국은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내 눈길을 사로잡은 그 Blank Street라는 카페, 알고 보니 원래 브루클린에서 시작해서 몇 년 전 런던에 처음 문을 열었는데, 지금은 런던은 물론 맨체스터, 버밍엄, 에든버러, 글래스고까지 매장이 40곳 넘게 퍼졌다고 한다. 세이지그린 색깔의 매장 간판이 특징이고, 커피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도 정작 매출의 절반가량이 말차 음료에서 나온다니, 사실상 말차 전문점이나 다름없다. 대형 커피 체인마다 말차 라떼가 기본 메뉴로 자리 잡았고, 요즘은 그냥 말차도 아니고 스트로베리 말차처럼 응용 버전까지 유행이라고 한다. 그 배경에 뭐가 있는지는 예전에 다른 글(영국 말차 열풍)에서 보면 되지만, 지금 하고 싶은 얘기는 그게 아니라 순전히 내 억울함에 관한 거니까.

억울함의 정체 — 나는 10년 넘게 그 물결을 놓쳤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 타이밍이 참 아쉽다. 계산해보니 내가 그 녹차 케이크 글을 쓰던 2013년과 지금 사이엔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이 있다. 짧게 스쳐 지나간 유행이 아니라, 그 오랜 세월 영국은 계속 '말차 없는 나라'였다가 최근에야 완전히 뒤집힌 거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영국에서 녹차 음료를 실컷 즐길 기회를 통째로 놓쳐버린 셈이다. 조금만 늦게 태어났거나, 그 때 좀 더 나중까지 영국에 머물렀더라면 나도 그 카페 어딘가에서 스트로베리 말차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을텐데. 하필 내가 그 나라에 있던 시절이 '말차 없는 영국'의 거의 전 기간과 겹친다는 게, 생각할수록 아깝다. 

즘 한국 카페의 말차 음료를 볼 때마다 나는 시큰둥하게 그거 나 다 마셔봐서 그런지 시시하다. 그런데 영국의 스트로베리 말차는 다르다. 그건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절의 영국, 내가 놓친 그 나라의 지금이다. 같은 말차인데도 이렇게 마음이 다르게 움직이는 게 신기하다. 아마 한국의 말차는 내가 이미 아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익숙한 유행이고, 영국의 말차는 내가 살았지만 더는 모르는 나라의 낯선 오늘이라서 그런 것 같다.

2013년의 나는 한국의 녹차 빙수를 그리워하며 민트로 버텼다. 2026년의 나는 영국의 스트로베리 말차를 그리워하며 인스타그램만 들여다본다. 두 그리움의 방향은 정반대지만, 결국 같은 마음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내가 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맛있는 일들에 대한 순수한 아쉬움. 다음에 영국에 갈 일이 생기면, 관광지도 쇼핑도 다 제쳐두고 제일 먼저 Blank Street부터 찾아가 스트로베리 말차를 한 잔 마시러 갈 생각이다. 그런데 그 때에도 스트로베리 말차는 있겠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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